아이와 영화보기 #2 - 9 (나인)

나는 아이와 함께 미술관에 가는 걸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클래식 보다는 설치미술이나 현대미술과 같은 파격을 더 즐기는데, 그 미술가의 상상력과 그를 현실로 만들어내는 능력에 감탄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9(나인)"을 아이와 함께 보게 되었다. 이 애니메이션은 흔히 볼 수 있는 픽사(디즈니)나 드림웍스의 것이 아니고, 캐나다의 독립 스튜디오에서 만든 것이라 캐릭터의 디자인이 독특하다.

맨날 보던 뺀질뺀질한 텍스쳐와 인공적인 조명이 아닌 봉제인형 캐릭터가 매우 특이하고, 당연히 아이의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내용은 좀 암울하다. 과학의 발전이 인류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재앙이 될 것인가는 논쟁적인 주제이다. 이 영화 9은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보여준다.

직전에 보았던 "투모로우랜드"가 과학기술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했다면, 이 영화 9은 그 반대편 극단에 있다. 스토리 자체도 암울하고, 아이들을 위한 유머코드도 전혀 없고, 근사한 히어로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집중해서 영화를 보았다.

울 아들은 숫자에 대한 집착이 있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9이고, 나머지 조연들도 1부터 8까지 숫자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아이는 스토리보다는 1에서 9까지 중에서 어느 숫자가 살아있고 죽었는지(영혼이 빠져나갔는지)에만 집착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아이에게는 다소 버거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미술관을 관람하는 것처럼 새로운 캐릭터와 그래픽, 분위기, 질감을 보여줬다는데 만족을 했다. 이 애니의 주제의식이 무겁고 어렵기도 하고...


이 애니는 뛰어난 과학기술을 잘못 사용할 경우 어떻게 되느냐를 보여준다. 여기서는 나쁜 정치인이 이 기계를 전쟁도구로 사용함으로서 지구의 생명 전체가 멸망하게 된다. 자세히 언급되지는 않지만 기계의 반란 혹은 지구의 평화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협이 인간이라는 인공지능의 판단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애초에 순수한 의도로 그 기계(다른 로봇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계, The Machine)를 만든 과학자는 자신의 영혼(?)을 담은 봉제인형 로봇 9개를 만들고 죽는다. 각 로봇들은 성격이 모두 다른데 아마도 사람을 이루는 여러가지 다중인격을 표현하는 듯 하다.

그 중에서 주인공이자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9은 호기심 많은 행동주의자이다. 결국 그의 호기심으로 기계를 깨우게 되고, 그리하여 자신의 친구들이 여럿 죽게 된다.  진실에 대한 호기심은 그 댓가를 요구하는 법이다.

결국엔 기계를 파괴하고 다시 평화가 찾아오지만 남은 것은 그들 봉제로봇들 뿐이다. 이 지구에는 과연 희망이 있는가?

영화 자체는 끝으로 가면서 과학과 논리보다는 감성과 종교성에 의존하는 듯하다. 로봇에 영혼이라니... 이건 좀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어른인 나에게 결말에 대한 공감은 참 어려웠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비춰졌을지는 모르겠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자동운전, 번역/통역, 문서작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실업자들이 양산되는 것은 결국 사회의 불안을 의미한다. 그들을 궁지로 몰게되면 어떤 상황이 생기게 될지 모른다.

결국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높아지는 생산성의 가치를 정부가 회수하여 인간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어야 한다. 만일 현재의 자본주의처럼 자본과 수단(로봇과 IT시스템)을 가진 일부 소수 기업이 이윤을 독점한다면 그 또한 큰 문제이다. 그래서 정치의 중요성이 다시금 강조되고 있다.

나쁜 정치인 보다는 첨단기술을 독점하는 기업들로 인해 생기는 불평등이 더 큰 문제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구글과 같은 기업들이 관련한 기술들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기술들을 소수가 독점할 경우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졌다 할지라도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를 아들과 나누긴 했으나,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이와의 대화는 한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기 보다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 다양한 측면으로 여러번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미래 기술에 대한 다양한 영화들을 앞으로도 같이 볼 생각이다.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들은 원래 있던 자리에 그냥 두는게 더 좋아. 하지만, 네가 어디를 봐야할 지 안다면 이 폐허에는 보물이 가득하지.

그 기계는 나의 지성만을 이용해서 너무 순수하게만 태어난거지. 그게 충분하지 않다는 걸 이제 알게 되었지만, 내 피조물은 잘못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단다. 또한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있지 못하지.그래서 사람에 의해서 쉽게 타락하고 조정될 수 있어.

그래서, 너희들을 만들었단다. 너희들은 인류의 마지막이고, 너희들은 내 영혼의 조각들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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