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영화 보기 #1 - 투모로우랜드

난 아이와 함께 영화보는 걸 즐긴다. 내가 유난한 영화광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보았던 영화를 통해 세상의 이치와 스토리텔링에 대해 깨닫곤 했던 기억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초등학교 2학년) 영화의 폭력/성적 수위가 항상 걱정이다.

내용으로는 너무도 훌륭한 영화여서 이런 문제 요소가 감당할 만한 수준인건지, 아니면 정말 문제가 없는 영화인지를 미리 훑고 나서야 아이와 함께 보곤 했다.

그래서 다른 어머니, 아버지들도 비슷한 고민을 할 것 같아 아이와 같이 본 영화들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첫번째로 얼마 전에 본 "투모로우랜드(Tomorrowland)"에 대해 소개할까 한다.

투모로우랜드는 디즈니에서 만든 영화다. 일단 디즈니에서 만들었다고 하면 영화가 생기발랄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나라를 그리고 있을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부모로서는 안심할 수 있는 브랜드이기도 하고...

주인공은 프랭크 역의 조지 클루니, 케이시 역의 브릿 로버트슨이다.  설정은 다소 황당하긴 하지만 평행우주 혹은 옴니버스이다.  이후 약간의 스포가 있으니 주의 바란다.


대략적인 스토리 얼개는 이렇다. 여기 말고 다른 세계가 있는데, 그 곳에서는 이곳에서 뛰어난 자질을 가진 과학자, 예술가, 탐험가 등의 인재를 스카우트해서 데려가 맘껏 실력을 발휘하게 한다. 그래서 그곳(투모로우랜드)은 매우 발전된 미래의 모습과 같다.

한편 이곳은 발달된 과학기술이 인류의 미래를 망친다는 디스토피아 사상이 팽배하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인류의 미래가 암담함을 가르치고, NASA는 폐쇄위기에 몰린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도 케이시라는 당돌한 여자아이는 낙관적인 의지를 가지고 이 세상의 위기를 구해낸다는 뭐 그런 내용이다.

이 영화의 주제 의식은 영화 초반부 주인공들의 경험담을 통해 드러난다.  먼저 프랭크가 어릴 적 만국박람회에 제트팩을 출품하는 장면이다.

- 이걸 네가 만들었어?
- 응
- 왜?
- 누군가가 만들 때까지 기다리는게 짜증나서.
- 작동하긴 해?
- 그럼요. 작동은 하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날진 못해요.
- 만약 네 제트팩이 엄밀히 말해서 잘 날았다면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어떤 도움이 되지?
- 재밌으면 되는 거 아네요?
- 워커 군, 재미만 있으면 안돼
- 불가능은 없어요.
- 무슨 뜻이야?
- 다른 애가 제트팩을 메고 날아가는 걸 본다면, 전 불가능은 없다고 믿고 희망을 가질테죠. 그럼 세상이 더 좋아지지 않겠어요?


다음으로 케이시가 수업시간에 선생님들이 암울한 미래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도 중요하다.

- 전쟁이 일어나면 모두가 파멸해요. 오늘날 핵으로 무장한 국가는 상대국에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고, 이런 무기는 환경을 파괴하죠.
- 빙하가 녹고 있는 건 기후 변화 때문이죠. 날로 높아지는 해수면, 이상 기후, 다시 말해 인류가 향하는 곳은 디스토피아죠.
-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브래드 버리의 '화씨 451', 오웰의 '1984년' 이 작품들 속의 암울한 미래가 현실이 되고 있어요. 심각한 수준이죠.
- 선생님!
- 그래 뉴튼?
- 바꿀 수 있어요?
- 응?
- 어두운 미래를 바꾸기 위해 인류가 뭘 하고 있죠?

요즘 인공지능과 로보틱스로 인해 사람들이 직업을 잃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학교에서는 소프트웨어 교육을 한다고 하고, 뭔가 사람들이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고 마는 변화의 시기에 와 있다는 걸 직감하고 있다.

어찌보면 암울한 미래가 펼치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우리 어른들의 잘못이고, 우리 아이들은 긍정적인 사고로 어떻게든 이 어두운 전망을 희망으로 바꿀 방법을 찾지 않을까? 이런 낙관적인 희망을 이 영화가 얘기하고 있고, 그래서 어른인 나도 감명있게 보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아이와 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는 영화에서 나오는 여러 재밌는 장면들에 흥분되어 있었지만, 차분하게 너희가 만들어 갈 미래는 너희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얘기를 해 주었다. 한참이 지나서도 이 영화를 떠올리면서 아들과 같이 얘기를 하곤 한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두시간이 약간 넘을 정도로 길다. 그리고 처음 한시간은 박진감 넘치고 재밌지만 나머지는 좀 처지는 느낌이 있다.

또한 로봇이긴 하지만 소녀가 차에 치이는 장면은 좀 슴뜩하다. 그리고 로봇의 목을 뽑아버리거나 로봇을 몽둥이로 패는 장면은 좀 거시기하다.

하지만 이런 불편한 요소를 모두 묻어버릴 만한 기발한 상상력과 비쥬얼적인 요소, 그리고 새로운 세계관과 스토리가 맘에 드는 영화다. 그래서 강추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인기글